연변 특유의 명절,'로인절'은 이렇게 탄생되였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로인을 존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으뜸가는 미덕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런 풍속이 대대손손 내려오면서 지금은 아예 로인들을 높이 모시는 명절까지 차리고 있는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해마다 8월 15일이 되면 ‘로인절’이란 이름으로 명절을 굉장히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족특색이 다분한 ‘로인절’은 어떻게 탄생되였을가요?
로인절의 발원지인 룡정시 동성용진으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에는 60~70년 전부터 '로인독보조'가 있었는데 바로 로인협회의 전신이라고 합니다.
1982년 6, 7월쯤 당시 동성인민공사의 로사장이신 전국 로동모범 김시룡이란 분이 공사 령도와 담소를 나누면서 명절축제를 늘려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3. 8부녀절, 5.1로동절, 6.1아동절이 있는데 왜 로인을 위한 명절이 없는가”고 하면서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지요.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동성공사 당위에 의해 받아들여졌는데 곧이어 동성공사는 활동방안을 제정해 상부에 보고하게 되였습니다. 이들은 동성용진의 '로인독보조'를 '로인협회'로 명칭을 바꾸고 8월 15일을 로인절로 정해 설립식을 개최했습니다.
동성용진에서 매년 8월 15일을 로인절로 정한데 이어 1984년 연변주위는 이날을 연변조선족자치주 로인절로 정하고 전 주 범위내에서 적극 보급시켰습니다. 2010년에 이르러 연변주인대에서는 립법을 통해 8월 15일을 연변조선족자치주 로인절로 확정지었습니다.
조선족의 민속풍정에 따라 이 날이 되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고향에 있는 부모들에게 축하메세지를 보내거나 일부러 고향에 찾아와서 로인들을 위해 축하잔치를 벌이며 젊은이들과 어린이들 할것 없이 온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노래와 춤으로 즐겁게 하루를 보냅니다. 또 이날 도시, 농촌, 기관, 단위에서도 로인들을 위한 축하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된 ‘로인절’은 지금 연변은 물론 전국적으로 나아가 해내외에서도 널리 알고 있는 명절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인민넷-조문판 / 길림신문 공동 출품
1982년 동성용에서 연변로인절이 탄생하다
중국공산당 11기 3중 전회가 끝난 후, 연변의 농촌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인민군중들의 물질적인 생활이 풍부해지면서 풍부한 정신 문화 생활이 절실히 필요했다. 1982년 6, 7월에 동성인민공사의 로사장이며 전국 로력모범 김시룡이 공사의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축행사를 늘여 문화 생활을 풍부히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우린 지금 3.8부녀절, 5.1국제로동절, 6.1아동절이 있는데 왜 로인들 명절이 없습니까? 전 로인들 명절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제안은 동성공사 당위에 의해 채택되였다.
동성공사는 행사방안을 상급에 재빨리 보고했다. 그들은 "로인독보조"를 "로인협회"로 바꾸고 성립일을 로인절로 정했다. 성립시간을 8월 15일로 정한 것은 일본침략자들이 투항한 이날을 축하하고, 농한기에 군중들을 쉽게 조직할 수 있기때문이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눈 깜짝할 사이 8월 15일이 되였다. 이날, 로인절 경축 행사는 동성공사 중심소학교(中心一小) 한 작은 운동장에서 진행되였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각 공사대대에서 온 만여명의 군중들이 작은 운동장에 모여들었다. 당시 총 인구가 2만여명인 동성공사로서는 "전 사회"를 뒤흔든 대사였다.
행사가 시작된 후, 각 대대 대표들은 큰 나팔의 격동적인 음악속에서 기발을 높이 추켜들고 차례차례 입장하여 검열하였다. 로인석은 림시로 마련된 주석대 앞에서부터 운동장을 따라 200m나 길게 마련되였고 작은 상마다 각 대대에서 “모아서” 삼가 올린 과일, 떡과 흰술이 놓여 있었다. 로인들은 위엄있고 단정하게 민족례복을 차려입고 연회상앞에 앉아 축하를 받고 맛있는 음식을 드시며 민속가무공연을 관람했다.
운동장 바로 앞 주석대 앞에는 주 지도자와 각 현시 지도자들이 자리를 했다. 동성공사의 선진경험을 학습하기 위해 여러 현시 단위에서는 사람을 파견해 로인절 축하행사를 참관했고, 행사에 참가해 로인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드렸다. 많은 촬영가들이 그 당시 모습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사진작가 황범송이 찍은 것이다.
행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속되였다. 지도자 연설, 로인협회 설립 , 문예공연, 환갑 로인을 위한 집단 생신잔치... 좁은 운동장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오래도록 울려퍼졌다. 당시 동성의 지도자와 군중들은 그들의 "경로애친(敬老爱亲)"행동이 전국 첫 로인협회 설립과 전국 첫 로인절 설립이라는 2개의 전국 “첫번째”를 창조할 줄을 몰랐다.
동성공사에서 로인절 행사를 개최했다는 소식은 전 주, 나아가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3년, 공사를 향으로 바꾼 동성용향에서 제2회 로인절을 계획하고 있을 때 상급으로부터 당시 문화부 부장인 주목지가 전국 각 소수민족대표와 함께 동성용향 제2회 로인절행사에 참가하련다는 통지를 받았다.
1983년 8월 15일, 제2회 동성용 로인절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되였으며 떠들썩하고 성대한 장면은 제1회에 못지 않았다. 문화부 부장 주목지, 중앙라지오영화텔레비죤부 부부장 정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 임영은 여러 소수민족 대표들을 거느리고 행사에 참가했다.
당시, 주목지의 인솔하에 주석대의 100여명 지도자 래빈들이 회의장에서 군중들과 함께 민족춤을 추었다. 명절 분위기가 동성용진에 흘러넘쳤고 동성용 로인들의 마음속은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그후, 전 주 곳곳에서 련이어 로인의 명절을 세웠으며 전국 수많은 민족 지역들에서도 잇달아 로인절 행사를 개최했다. 1984년, 연변주당위에서는 8월 15일을 연변조선족자치주 로인절로 정했다. 2010년, 연변주 인대상무위원회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로인권익보장조례"를 발표 실시했으며 8월 15일을 연변조선족자치주 로인절로 정했다. 2018년, 연변주 인대상무위원회에서 "조례"를 개정했으며 연변의 로인들은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더 많은 복지를 받게 되였다.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사진제공: 력사진술인 리광평출처: 연변조간신문